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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년에 우산도로 지명이 되었고 1471년 삼봉도 1794년 가지도 1900석도 1906년 독도로 변경되었습니다.
  • 신라 지증왕 13년(512년) 이사부가 우산국(于山國)을 복속시킴으로써 <삼국사기>나 <고려사>에 나오는 ‘우산국’은 울릉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후 섬의 이름이 혼란되어 사용되었으나, 점차 울릉도라는 명칭이 정착되면서 ‘우산’이라는 명칭은 독도를 가리키게 되었다. 1454년(조선 세종 14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 강원도 울진현조에서는 '우산, 무릉 두 섬이 (울진)현 정동(正東) 바다 한가운데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1530년(조선 중종 26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울진현조 에도 '우산도, 울릉도가 현의 정동 바다 한 가운데 있다'고 표현하고 있어 동해 상에 ‘무릉’을 울릉도로, ‘우산’을 독도로 분명하게 두 섬을 나타내고 있다.

  • 조선시대에는 독도는 우산도(于山島)외에 삼봉도(三峰島), 가지도(可支島)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삼봉도(三峰島)라는 명칭은 <성종실록>(1476년)에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독도의 형상을 세 개의 봉우리로 기술하면서 사용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 또한 가지도(可支島)는 1794년(정조 18년) 강원도 관찰사 심진현의 울릉도 보고서에 “갑인년 4월 26일에 가지도(可支島)에 가보니 가지어(可支漁)가 놀라 뛰어나왔다”는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지어’는 강치(Zalophus Californianus)의 우리말인 ‘가제’를 음역하여 부른 것으로, ‘가지도’란 강치가 많이 사는 섬이란 뜻이다. 실제로 독도에는 강치가 많이 서석하였으며, 서도 북서쪽에는 ‘큰 가제바위’와 ‘작은 가제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다.

  • 석도(石島)는 대한제국 1900년(고종 37년) 10월, 대한제국 칙령 41호에 울릉도를 울도군이라 부르고 군수를 파견하며 울릉 전도(全島),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하도록 규정하면서 등장하였다.

    여기서 울릉 전도는 울릉도를, 죽도는 울릉도 동쪽에 접해 있는 작은 섬 죽도를, 석도는 독도를 가리킨다.

  • 석도(石島)라는 한자를 한글로 표현하면 ‘돌섬’이 되고, ‘돌’을 지방 방언으로 ‘독’이라고 발음하여 울릉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돌로 된 섬이라는 ‘돌섬’, 즉 ‘독섬’이라 불렸다.

    이 ‘독섬’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현재의 ‘독도(獨島)’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1906년 3월에 울릉군수 심흥택의 보고에 ‘본군(울도군) 소속의 독도’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

한편, 독도는 나라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졌다.
일본에서는 울릉도를 다케시마(竹島), 독도를 마쓰시마(松島)로 부르다가 1905년 일방적으로 독도를 시마네현 소속 편입하면서
다케시마(竹島)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1849년 독도를 발견한 선박 '리앙쿠르(Liancourt)호'의 이름을 따서 ‘리앙쿠르암(Liancourt Rocks)’이라고 불렀으며,
영국에서는 '호넷(Hornet)', 러시아에서는 ‘메넬라이-올리부차’(Menalai-Olivutsa)라고 불렀다.

<출처 : 독도종합정보시스템 (http://www.dokdo.re.kr/)>